일제를 화해와 용서하자는 최초의 장로교목사 길선주 반일감정을 없애다.
1907년 1월14일 평양 장대현 교회부흥회에서 한국인 최초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은 길선주 장로는 1500명의 신도앞에서 자신의 죄를 공개적
으로 털어놓았다.그날밤 길선주목사의 얼굴은 위엄과 능력이 가득찬 얼굴
이었고 순결과 성결로 불붙은 얼굴이었다.
그는 길목사가 아니었고 예수님이었다.길선주의 고백이후 모든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은 자신의 죄를 털어놓고 회개하는 회개 릴레이가 밤을새워
펼쳐졌고 새벽을 넘겨 이어졌다.살인죄와 도둑질,간음을 비롯한 방화
강도짓,거짓말등 온갖 더러운 죄들을 쏟아 놓으며 수치심으로 몸부림 쳤다.
심지어 한 노인은 여태껏 미워해 왔던 일본인까지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1907년 여름 고종퇴위와 구 한국군대의 강제해산으로 전국이 의병운동
으로 뜨거울 때 평양만큼은 무풍지대로 남았는데 이를 두고 선교사들은
“부흥운동을 이끈 길선주 목사의 공로다” 라고 칭송하였다.
만약 길선주가 무저항의 원칙 그리고 “지배자는 하느님이 임명한다”
라는 교리를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지 았았더라면 평안도 전체가 반란을
일으켰을 것이다.“라고 안창호는 한탄 했었다고한다.
1988년 주진오는 “이를 통해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에게 죄의식과 용서와
사랑을 강조하였다.그것은 일제의 침략도 한국인의 죄때문이고 선교사에
대한 반감도 죄이며 일본에 대한 미움을 갖지말고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해 하라는 것이었다.그리고 새 지배자에게 복종을 강조하였다.
또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에게 죄의 결과로서 지옥형벌을 강조함으로서
죄의 고백과 회개등 개인문제에 집착케 했다.
그렇게 함으로서 봉건사회의 구조적 악과 일제 침략이라는 조직적 폭력
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차단 시켰다.그리하여 당시 우리가 겪고있던
국가적 위난은 죄의 결과라고 자연스럽게 수용되었다.
일제의 침략이 자신들의 죄악을 징벌하는 신의 채찍으로 하느님의 영원한
섭리아래에서 이루어 지는 것으로 믿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시대에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대주어라고 했던 설교는
로마통치당시 예수가 지배자 로마를 사랑하라는말과 일제때 침략자일본을 사랑하라는 말이
2천년 전이나 1900년후 조선이나 21세기인 지금이 같고 문창극 총리후보도 일제침략은
하느님 뜻이라고 말했다가 낙마했다)
댓글:길선주 목사는 원래는 불교의 스님이였구요....
개신교로 개종했는데 불교때 새벽예불을 드리던 습관을 그대로 계속
유지하던것이 지금의 새벽기도의 시초가 된것 이라 합니다.
따라서 새벽기도는 사람이 만든 제도일뿐 성경적은 아니지요.
전세계에서 새벽기도는 한국에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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