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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북한의 눈으로 남한을 한번 보자!

정치soehymjul (soehym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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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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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북한의 눈으로 남한을 한번 보자!

 

 

[한겨레] 대부분의 한국인들 같으면, 세계에 고정된 중심이 있다고, 의식·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다. 물론 중국이 아닌 미국이 바로 그 중심이고, 미국의 문물제도를 대체로 복제해놓은 한국은 그 중심에 꽤나 가까운 것으로 의식되기도 한다. 북한은 “비록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이 중심으로부터 한참 벗어난, 18세기로 치면 ‘이적’(夷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홍대용은 청제국을 탈중심화시켰지만, 과연 한국에서 미제국을 탈중심화시켜 세상을 보는 것은 오늘날 어느 정도 보편적인가? 한국의 주류는 북한 숙청의 잔혹성에 비판을 퍼붓지만, 아무런 재판 절차도 없이 빈라덴과 그 가솔을 죽인 미군 부대가 김정은까지 죽이겠다는 말에 아무 위화감도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개항기의 사회·경제·정치적인 변화를 근대의 시발점으로 삼곤 하지만, 지성사 차원에서의 엄청난 변화는 대략 18세기 중반에 일어났다. 바로 그때 근대적 지식체계를 처음으로 접한 조선인들은, 이 세계에 고정된 중심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한나라 시절에 한사군과 한반도의 준(準)국가들이 처음으로 관계를 맺었을 때부터 중국은 세계의 고정된 중심축으로 여겨지곤 했지만, 18세기 중반의 실학은 이 오랜 전통에 종지부를 찍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홍대용(1731~83)의 유명한 <의산문답>(1766)에는 그가 북경에서 지구의와 서양 선교사들이 만든 세계지도를 본 소감이 나오지 않는가? 땅덩이는 둥글기 때문에 지구 위의 정계(正界)와 도계(倒界)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홍대용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서양인에게는 서양인이 정계, 즉 중심이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중심이지만, 그건 그저 하나의 주관적인 ‘입장’일 뿐이다. 사실 이와 같은 탈중심, 자기와 타자의 상대화가 가능해지고 나서야 개인이나 나라 차원에서의 주체성 확립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근대적 ‘중심의 상대화’야 18세기에 접어들어 가능해졌지만, 상대성 원리 자체는 동아시아 철학 속에서 수천년 동안 발전해 왔다. 불교도 자아와 타자를 연기론의 그물로 연결되어 있는 ‘둘이 아닌 하나’로 보고 주체를 상대화하지만, 유교나 도교에도 상대주의적 요소들은 강하다. <맹자>의 ‘진심’ 편에도 공자에 대해 “동산에 올라가 노나라가 작다고 했고, 태산에 올라가 천하가 작다고 했다”고 나오지 않는가? 고향 노나라의 동산에 올라간 견지에서는 노나라가 작아 보이지만 천하의 태산에 올라가면 천하 전체가 작아 보인다. 결국 이 ‘견지’야말로 의식을 결정짓는 것이다. 도가 사상 같으면 이 상대성 논리를 더욱더 심화시켰다. 이미 우리가 평소에 쓰는 언어의 일부분이 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표현은, 사실 <장자> ‘추수’ 편에 나오는 개구리와 자라의 대화에서 따온 것이다. 우물 안의 즐거움이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개구리는, 자라의 바다 이야기를 듣고서야, 즉 자신이 선 견지를 한번 남의 시선을 통해 상대화·객관화하고 나서야 비로소 객관적인 진실에 약간이라도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우리도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해보기 위해 우리 자신들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타자인 북한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도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대부분의 한국인들 같으면, 홍대용이 비판했던 18세기의 고루한 선비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세계에 고정된 중심이 있다고, 의식·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다. 물론 중국이 아닌 미국이 바로 그 중심이고, 미국의 문물제도를 대체로 복제해놓은 한국은 그 중심에 꽤나 가까운 것으로 의식되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북한은 “비록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이 중심으로부터 한참 벗어난, 18세기로 치면 ‘이적’(夷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한데, 이와 같은 중심과 주변의 구상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생각일 뿐 그 어떤 객관적인 실체도 아니라는 걸, 타자의 시각을 의식하면서 깨닫는 것은 중요할 듯하다.

 

한국 매체들은 보통 북한의 그 어떤 군사와 유관한 움직임들에 대해서도 ‘도발’이라고 규정짓곤 한다. 예를 들어 2012년의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를 한국에서는 ‘도발’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물론 그것보다 3년 전에 한국이 나로호를 최초로 발사하려고 했을 때 이에 대한 <한국방송>(KBS) 보도의 타이틀은 “꿈과 도전의 기록, 대한민국 우주발사체 나로”였다. 우리가 하면 꿈과 도전이고, 저들이 하면 도발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논리지만, 남한 측에서 별생각도 없이 하는 행동에 대한 북한 측의 시선이 어떨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보자.

 

약 1년 전부터 한국 보수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김정은 제거 특수부대”, “북한 지도부 참수 작전”에 대한 보도를 했다. 요즘 같은 경우에는 “유사시 김정은 제거 임무를 맡을” 한·미 특수부대들이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그 어떤 보수언론도 이와 같은 소식에 토를 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유엔에 가입해 있는 주권국가의 원수를 죽이는 준비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침략 행위를 금지한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 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에 전면 위반되며 사실상 ‘국가적 테러리즘’을 방불케 하지만, 우리에게 “내가 하면 로맨스”의 원칙은 철두철미하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북측에서 특수부대를 창설하여 유사시에 남한 3부 요인을 죽일 준비를 하겠다고 대서특필했다면, 남한의 예상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 ‘도발’이라는 말이 또다시 모든 매체 지면들을 도배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한이나 미국 측의 행동에 대한 북한 시각을 한번 상상해보자.

 

남한 언론들은, 장성택 등 일부 권력층에 대한 숙청들을 두고 대개 ‘폭군’ 김정은의 ‘잔혹성’을 소리 높여 규탄한다. 필부든 공경대부든 누구를 사형하든 간에 사형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잔혹행위임에 틀림없다. 물론 굳이 장성택 등 북한 권력층에 대한 사형을 비판하자면, 한국인들에게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되는 미국이야말로 매년 수십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국가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한데 한번 “중화 대 이적” 같은 공간적 서열화의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객관의 시도를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모습도 바로 보려 하지 않는다. 2013년 9월 임진강을 넘어 북한으로 넘어가려는 시도를 했던 한 한국인 남성이 한국군에 의해 사살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코미디와 같은 재판을 해서 누군가를 숙청한 것도 잔혹행위임에 틀림없지만, 아예 재판 절차도 없이 탈주 시도를 한 사람을 이와 같은 식으로 죽이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동네 언덕에 올라가는 데에만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노나라가 세상의 전부로 보일 수 있듯이, 북한을 ‘이적·악마’로 보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북한으로 넘어가려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당연지사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김정은을 “경애하는 최고 사령관 동지”라고 부르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장성택의 제거를 당연시하는 것을 과연 탓할 수가 있겠는가?

 

이 글을 읽고 나를 “친북파”로 볼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친남”할 일도 “친북”할 일도 내 평생에 없다고 본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민중들의 행복일 뿐이다. 나는 남한의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한 미국 중심의 세계관에 비판적이듯, 어떤 면에서는 18~19세기의 위정척사 사상가들의 소중화론을 방불케 하는 북한의 지나친 자국 중심적인 시각에도 비판적이다. 그 어떤 편협함도 평화 만들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만 될 것이다.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필히 “나”의 주관성을 넘어 “나”와 “타자”를 아우르고 결국 만나게 하는 자기 상대화의 논리를 필요로 한다. 나는 그래서 홍대용의 선구적인 중국 상대화야말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공기처럼 익숙해진 미국 중심주의를 상대화하고 북한과 우리를 평등하게 관찰해야 평화를 만들기에 훨씬 더 적합한 견지에 설 수 있을 것이다.

 

홍대용은 청제국을 탈중심화시켰지만, 과연 한국에서 미제국을 탈중심화시켜 세상을 보는 것은 오늘날 어느 정도 보편적인가? 한국의 주류는 북한 숙청의 잔혹성에 비판을 퍼붓지만, 아무런 재판 절차도 없이 빈라덴과 그 가솔을 죽인 미군 부대가 김정은까지 죽이겠다는 말에 아무 위화감도 느끼지 않는다. “세계의 중심 제국”의 폭력은 우리에게는 “불륜”이 아닌 “로맨스”일 뿐인데, 과연 그런 시각을 가지고 한반도의 중생들을 전쟁의 참화로부터 지킬 수 있을까?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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